categorized under 추억 만들기 & written by BOK2
2월초부터 오랜 기간 양왕과 날짜를 맞춘 끝에 결국 3월 6일 토요일에 부대 면회를 가기로 확정지었다. 그리고 그 전날 5일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온다는 그의 말에 일단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학교를 벗어났다.
약속대로 동대문 역에서 내려 근 두달만에 만나게 될 양왕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는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이 늦은(?) 나를 맞이(?)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만남의 기쁨을 쇼핑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려는 형을 따라 각종 옷가게들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우리부대 군견병으로 근무했던 아저씨가 일하는 옷가게에서부터 재고정리하는 듯한 흉흉한 아웃렛까지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옷과 신발, 모자, 가방을 골고루 구매한 뒤 화장실에 들어가 전부 갈아입고 다른 사람이 되어 나왔다. 내일 새벽 6시에 기상해서 면회를 가야했기에 왕께 간단한 시공간약속을 잡고 물러나왔다. 함께 집에 가는 길에 댄스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디에세랄의 위력을 체험했다. 하악하악.. 여자의 춤이 끝나고 남자들만이 무대에 오르자 우린 바로 자리를 떴다.
새벽 6시, 기적같이 일어났다. '3대대 기상'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던 복왕은 어디로 갔는지, 전역 이후 지금까지 그저 잠에 취해 끙끙대는 아침의 연속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다시는 가지 않겠다' 고 선언했던 부대에 가는 날이기 때문인가?!
벌떡 일어나 약속대로 양왕에게 모닝콜을 걸었다. 양왕은 밤새 서울 생활을 즐기느라 아직까지 깨어있던 상태였다. 나도 3시간 반 가량 자고 곧장 일어났지만 양왕의 무한체력을 믿고 예정대로 7시에 집에서 나왔다.
지긋지긋하게 배차간격 느린 1101번 버스는 무려 40분만에 왔고, 40분만에 검단 근방까지 달렸다. 취사장에 전화를 걸어 면회를 나오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양왕과 나는 오늘의 당직간부들을 예측해 봤다. 정훈장교-통신소대장 등등 때깔 간부들을 떠올렸지만, 예상을 깨고 당직사령은 하필 그 악명높은 12중대장ㅅㅂ 사관은 군담ㅅㅂ 이었다-_-..
12중대장은 무려 족구장 앞까지 우리를 마중나왔다. 물론 우리를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통제는 통제관이 하는거지만,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분께서는 무려 대대장에게까지 인사를 하도록 강요했다. 젠장 면회를 일요일날 왔어야 했다-_-..
오랜만에 만난 의무대 애들과 호들갑 떨다가 주의먹고-_-.. 시키는 대로 대대장실에서 굽신거리며 악수를 하고 나오자마자 중앙현관으로 의악의악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다가 또 혼났다-_-; 하여간 이분 여전하다. 집에 오면 분명 처자식들도 졸라 통제할 기세다.
간부들 무리 속에서 관리관과 잠시 마주쳤지만 머뭇거리며 지나쳤다. 나중에 듣기로 내가 자기 줄 선물 안사왔다고 몹시 서운해 했단다. 탄반은 돈을 줄거라고 했단다. 이분들의 구질구질함도 참 여전하다.
12중대장의 배려(?) 덕분에 행정반에서 군담에게 방문 신고도 했다. 중위, 중사 이하 간부들은 대부분 양왕보다 어려서 오히려 형에게 존대를 해야했다. 양왕을 어려워하는 간부들!! 보는 재미가 완전 쏠쏠했지만 군사보안상 사진으로 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2중대장이나 군담같은 막장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린 선배님(;;)이었다.
간부들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생활관도 돌고 드디어 대망의 취사장 진입. 80대라고 으스대는 쟈스틴 콘프레이크와 막 100대 깨진 림스틴, 아직도 상병 위제트와, 더욱 더 풍만해져 개돼지가 된 릴로정, 일병의 진수를 보여주는 솔선수범 빨래 오박사 선생, 면도 안한지 좀 되어보이는 털보, 그리고 아직도 막내인 신병(내 군대 기억은 올해 1월로 정지되었으므로). 취사병 출신인 쌍포영과 캐년도 놀러와 취사장은 여전히 그 특유의 와글와글함을 과시했다.
우리의 등장을 반기는 그들을 보며 왕고시절의 영화로움(?)을 상기했다. 이 와중에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은 찾아왔고, 조리실로 달려나가 일을 마무리하는 불쌍한 일병들. 저 우글거리는 상병장들 사이에서 아직도 일병인 빨래 이하 3인에게 잠시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왕고 시절에도 조리실을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병사들은 내가 취사지원 보는 막내인 줄 알고 '취사장 아저씨~' 하며 나를 찾곤 했다. 두달이 지났을 뿐인데 내 머리카락은 길어졌고, 옷도 더이상 얼룩덜룩한 활동복이 아닌 나는, 이제 더 이상 취사지원하는 병사들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전히 꼬질꼬질한 휴게실, 양왕과 함께 드러누우니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히 비좁았다. 어림잡아도 내 방 크기의 반밖에 안되는 좁은 이 공간에서 어떻게 10명이 함께 살았던 것일까. 디에세랄이든 핸드폰이든 이들에겐 모두 신기하고도 기막힌 물건으로 보이는 듯했다. 화상으로 남기지 못한 추억을 아쉬워하는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셔터를 눌러 주었다.
12중대장이 사령이었던 탓에 짜장면이나 피자 반입은 생각도 못한 채, 아쉬운대로 대략 5만원 가량을 px에서 사들였다. 과자나 냉동은 역시 군대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것들이다; 과자값만 봐도 밖에서는 감히 사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데, 역시 px 면세의 힘은 군인을 배부르게 하고 릴로정을 살찌게 한다.
간부식당 테이블을 붙여놓고 과자와 냉동으로 배를 채우며 2개월만에 함께 하이킥을 시청했다. 본래 양왕과 짬밥을 먹어보자고 결의했었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과자 앞에서 말을 잃었다. 식사를 마친 뒤 노래방을 포함해서 부대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유희를 즐겼지만, '복병장 취사일기' 의 원산지(?) 사지방은 아쉽게도 통제였다.
취사장 뒷편에 대대op가 있어 군사보안 시설이 본의아니게 드러나는 문제가 있지만, 취사병 조상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돌계단에서 마지막으로 단체사진 촬영을 했다. 아쉬운대로 대대op는 모자이크 처리. 짬통 앞에서 다찌의 짬삽 간지폭풍 사진을 찍은 뒤 취사장을 벗어났다. 한번 더 소대를 돌고 의무대 아이들과 군의관실에 잠입해 사진촬영을 마친 뒤 면회를 마무리 지었다.
위병소로 나가는 우리는 마치 또 한번 전역하는 것처럼 군중들의 호위를 받으며 분에넘치는 권세를 누렸다. 철창 안의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천천히 부대와 멀어지는 그 느낌은, 전역할때의 그것과 엇비슷했다.
입대부터 말년휴가까지 검단으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늘 심장을 죄는 듯 했지만, 오늘 우리는 검단이 문제가 아니라 '군대' 였기에 그렇게 숨이 막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꼈던 후임들을 보는 일이기에 검단은 더 이상 숨막히고 괴로운 공간이 아닌, 2년간의 희노애락이 담긴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달을 약속하고 면회를 마쳤다. 다음에는 부디 양왕보다 어리고 만만한 간부가 당직사령이길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사관이 정훈장교면 금상첨화.
전역이후, 부대로 면회를 간 적은 없지만, 간혼 생각이 날 때면, 가보던 그 곳.
위병소 근무를 설 때, 가끔 언덕 위에서 부대를 보던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궁금했는데,
가서 언덕 위에 섰을 때, 그 느낌은 '아.. 여기가 내가 근무했던 곳이군.'라는 생각과 더불어 들어가지 못 하니, 좀 아쉽네라는 생각이 교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 사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 않을까?? 아니면, 지나가다가 노상방뇨를 위해 세웠는데, 부대가 보여서 이쪽으로 돌아섰던지.
역시 김포 이후로 나가는 곳은 다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우리 때는 김포읍에 모여서, 기억도 나지 않는 다방에 모여서 기다렸다가, 다 같이 택시타고 복귀하곤 했는데.ㅋㅋ
나에게 97년 이후에 끊긴 기억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