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상 내무부조리인 것은 알지만 며칠전부터 후임들에게 전역백비용을 강제거출을 했다. 전역할 때의 해방감도 해방감이지만,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후임들이 전역자에게 마음의 표시로 선물하는 전역백이 나는 참 부러웠다. 전역백을 선물하는 즐거움이 한편으로는 전역때 내가 또 받게 될 기쁨을 예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 박병장에겐 그가 좋아하던 '일년이면' 의 가사를 따서 '일년이면 부식잡던 기억을 잊고' 라고 전역백 가운데에 새겨넣었던 바 있다. 지금까지 선임들 여럿 보냈다. 이제 양왕, 노왕, 다음엔 나다.

나는 양왕의 명예로운(?) 전역을 위해 저번주부터 전역백에 새길 문구랑 아이디어를 짜고 비용 수금과 함께 계획을 착착 진행해 나갔고, 다음주가 동원훈련+행군이 예정되어 있던 고로 조금 무리해서 오늘 전역백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관리관의 마수를 피해 상향식 일일결산 핑계로 취사장을 빠져나온 나는 행정반에 들렀다가 곧장 군장점에 가서 그의 전역백과 전역모, 전역요대를 구입했다.

전역모와 요대에는 그가 원했던 대로 '해안의 전설 양왕 27세' 라고 새겼다. 대구법상 중간에 '대대의 허술' 을 넣어보고 싶었지만 곱게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전역백 왼쪽엔 용마크를 달고, 가운데엔 군장점 아저씨를 졸라 빨간색 태양무늬를 넣었다. 군장점에 태양마크가 있을리 없으므로 아저씨는 수작업으로 그만의 무늬를 만들었고 곧 전역백의 상징이 되었다. 오른쪽엔 내가 기획한 회심의 문구를 새겼는데, 강제 거출한 비용은 결국 여기서 대부분 소진되었다.

<대대 폭군 노왕, (보안상 본인 생략) , 쟈스틴 콘프레이크, 이모의 아들 호영, 현중 친구 종섭, 내 궁디에 수박씨, 연주공주와 현중난쟁이, 빨래엔 태환, 털보 영우 등 이하 9명은, 양왕의 전역을 승인하며 이 전역백을 수여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취사병 일동.>

재봉틀로 이 길고 험난한 문구를 새기는 동안 일언반구 없이 묵묵히 제작에 최선을 다해주신 아저씨께 감사하며 나는 나는듯이 걸음을 옮겨 취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전역하기엔 열흘이 조금 넘게 남았지만 양왕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전역 3종세트를 선물했다. 태양 병장은 태양처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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