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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휴가가 풀렸다는 소식이 돌았다. 특히 사단급 휴가가 풀렸다는 점에서 주목한 나는 절친 12중대 인사계 디에스를 찾아갔다. 분파2등 부상으로 사단 부관참모 포상을 받은 디에스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기에 그는 존재 자체로 내게 조력자가 되었다.
사단급 포상에는 날짜가 없다. 곧 언제든 쓸 수 있는 휴가라는 소리다. BMK는 10월에 받은거면 이미 휴지라고 못박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디에스를 모셔와 삼자대면을 실시했고 결국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튿날, 상급부대로 출장갔던 디에스를 통해 출타가 가능함을 재확인했다.
오늘 저녁까지 휴가명령서를 전부 인사과로 보내야 한다는 디에스의 정보에 따라 나는 손쉽게 중대장의 승인을 타냈다. 두 중대의 인사계를 통한 내 정보력은 이미 중대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문제는 보급관이었다. '신종플루가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 로 운을 뗀 그는, '사단급 이상 포상은 나갈 수 있다는 근거가 뭐냐' 며 구두명령이 아닌 문서화된 근거를 들고 올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상급부대의 지침' 은 결국 그의 끈질긴 잔소리와 방해를 이겨냈고 사인을 받는데 성공했다! (휴가 곱게 보내준 적이 한번도 없다-_-)
어머니께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는 전화를 드리고 즐겁게 취사장으로 돌아와 후임들에게 과자 한바구니 풀고 기분 팍팍 내고있는데 BMK가 취사장으로 찾아왔다.
'이성복 병장님, 휴가증이 없어졌습니다..'
-_-..!!!????!??!??!???!???!
대대 인사계 뭐병이가 휴가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뭐병을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휴가증이 없으니 휴가를 나갈 수 없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후임 좀 괴롭히지 말라는 쳐죽일 소리나 하고 앉았고-_-!! 나는 분명히 BMK에게 휴가증을 제출했었고, BMK는 뭐병에게 인계했다는데 왜? 왜?? 왜???
당황한 나는 또다시 디에스를 찾아가 SOS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패 받은 근거가 있으니까 무조건 나갈 수 있다며 나를 달랬지만, 결재도 받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휴가를 이렇게 방해받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웠다. BMK와 뭐병을 끌고 인사계로 찾아가 압수수색을 펼쳤지만 결국 휴가증은 찾을 수 없었다.
이후 나는 BMK를 데리고 12중대 생활관 앞에서 디에스와 다시 접선했다. 집에 가져다 놓은 상패를 사진촬영해서 내일 퀵이나 특급우편으로 부치는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 막상 결론이 나왔으면 바로 실천에 옮겨야지,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께서도 적잖이 당황하신 모양이다. 퀵도 아니고 내일 아침에 바로 아버지께서 직접 들고 오신다고.. 뭐병이 덕에 우리 아버지께서 거동하게 되셨다!! 하지만 일이 급하니 우선 그렇게 하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18일에 출타하지 못하면 영영 나갈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25일 성탄절 복귀불가 1일 신정 복귀불가 5일은 전역-_-;;)
개투덜투덜댄 끝에 결국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했고, 취사장의 바쁘면서도 지루한 일과를 며칠이라도 벗어나고자 한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서둘러야 했다. 말년휴가를 이미 써버린 말년의 마지막 발악이라고나 할까!
다행히도 고난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10시도 되기 전에 위병소에 사진을 맡기고 가셨고, 아버지를 뵐 수도 있었지만 위병조장이 후임 갈구는데 정신이 팔려 취사장으로 전화를 안해준 덕에 전화로 아버지를 귀찮게 하긴 했지만 '문제의 사진' 이 위병소에 도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버지와의 재회는 아쉽게도 결국 실패했지만 사진을 집어들고 순식간에 인사과로 달려갈 수 있었다.
한시간 뒤, 휴가가 정상적으로 올라갔다는 BMK의 전화를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가를 다녀오면 나의 일과는 딱 5일 뿐이다. 남은 일과는 다음과 같다.
18 ~ 21 휴가 / 22 ~ 24 격리 / 25 성탄절 / 26 토 / 27 일 / 28 ~31 일과 / 1 신정 / 2 토 / 3 일 / 4 일과 / 5 전역!!
해방의 그날이 정말 머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