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수도군단 부대가 행군 중 대휴식을 하필 우리 취사장에서 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12시에 진입할 예정이라 그때 한두명은 취사장에서 온풍기를 틀어주고 대기를 해야 한단다.

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12시면 뭐, 그 시각 불침번인 림스틴과 막내가 어떻게든 하겠지-_-..' 하며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불침번은 중대 복도를 지켜야 하니 따로 인원을 기상시켜야 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다면 분대장인 나는 중간에 일어나야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복불복을 벌였고, 빨래가 최종 패배함으로써 풀침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말년답게 새벽조고 불침번이고 다 하기싫고 그저 풀침을 원해ㅠ)

그리고 10시, 취침.. 그러나,

10시 40분에 당직은 나를 깨웠다ㅠ 수도군단 간부들이 벌써부터 몰려왔단다. 마침 그날 당직사령이 중대장이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분대장인 나를 깨우라고 했던 것이다. 30분도 채 자지 못한 채 깨어난 나는 아직 잠들지 않았던 털보를 데리고 취사장으로 갔다.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와 수도군단 간부들의 설레발은, 이내 나를 맨정신으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이후 수도군단 간부들의 조리실 난입과 간부식당 점거를 묵인한 채 나와 털보는 휴게실에서 숨죽이며 그들이 어서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간부식당에 아예 상을 차린 그들은 신나서 오뎅탕과 김밥, 라면 등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설레발댔고, 그들을 감시하며 간간히 일을 거들어주고, 약 1시간쯤 지나자 고된 발걸음들이 병사식당으로 밀려들어왔다.

12시, 불침번 근무로 기상을 한 림스틴과 막내가 취사장으로 왔다. 아 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 하마터면 2시가 넘도록 휴게실에서 찌글대고 있어야 할 처지였는데, 하늘이 나를 돕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인수인계하고 떠나려는 찰나, 나와 털보를 한사코 막는 간부들, 수고했다며 미지근한 오뎅탕을 건네주는데, 그 덕에 30분을 더 날려먹고(나는 그저 자고 싶었다ㅠ), 대강 배를 채운 뒤 털보와 함께 지통실로 달려가 중대장에게 교대 보고를 한 뒤 생활관으로 돌아와 숨가쁘게 잠들었다.

그런데, 5시 50분, 당직이 또 날 깨웠다. 아 또 왜!!!!

새벽조를 나간 위제트가 가스가 없어서 조리를 못하고 있다고 행정반 전화로 SOS를 요청한 것이다. 내가 가서 본다고 해봤자 이미 바닥난 가스를 만들어낼 재주는 없을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일단 전화로 기본적인 조치법을 일러주고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중앙복도를 나섰다. 밖은 마침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ㅠ

비에 젖은 몸을 떨며 취사장에 가보니 정말 가스가 바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겨울인데 기화기가 고장난 탓에 기체밸브를 사용했는데 마지막 LPG통이 통째로 얼어버린 것이다. 얼어버린 LPG통에 열을 가하면 일시적으로 가스가 조금씩 올라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급한대로 정수기 온수를 받아다가 끼얹었고, 결국 약간의 가스와 데워지다 만 솥의 남은 열기로 어설프게나마 조리를 마무리 하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위제트는 가스엉클에게 전화로 통사정해서 아침에 우리 부대부터 가스배달을 오게끔 했다. 끓다만 콩나물국이나 데우다 만 두부조림이나 둘 다 뒷맛이 어설펐지만, 어쨌든 상황 종료!

이런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역시 '짬' 만한 것이 없다. 웬만한 사건에는 선례가 있기 마련이고, 작년에도 가스가 바닥나 70도의 기름에서 생선가스를 '익혀서' 내본 적이 있었으니..

위제트는 내가 있어준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고 했다. 두번이나 깨워서 일어나고도 결국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본인은 모범 분대장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물론 맡은 바 임무가 없으면 논다. 말년이니깐-_-..) 하여간 말년에도 취사장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졸리다!! 난 그저 풀침이 하고싶을 뿐이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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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12/15 10:24
역시 상황대처 능력은 짬만한 것이 없지요....
이제 그대 민간인으로 될 날이 대략 20여일 남은 것 같은데...

분대장은 언제까지 하나요??
정말 전역하루 전까지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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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12/16 17:21
오늘이 딱 20일 입니다ㅎ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셈이죠..ㅎ

저희부대는 특성상 전날까지 해야합니다ㅠ

그동안 통신보안상 올리지 못했던 대박 글들을 봉인해제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설렙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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