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을 혼자 서면서 조기기상 하는 아이들을 배려했던 나는, 조금 더 재우려는 아이들의 배려에 의해 6시 반에 일어났다. 취사분대 전상서 1편, 2편, 전스틴에게, 림스틴에게, 위제트에게, 릴로에게, 오박사에게, 털보에게, 막내에게 쓴 수십장에 달하는 편지 꾸러미들을 들고 내려와 휴게실 구석에 쌓아 놓았다. 간단히 전역백을 싸고, 나의 전역을 못내 아쉬워하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7시 40분쯤 소대로 올라가 전역하는 동기들과 모였다. 제법 길렀다고 생각했던 내 머리가 모범생으로 보일 정도로 그들의 머리는 장발이었다. 그때 11중대장이 중앙계단으로 올라오다가 우리를 봤다. 예비역 마크가 달린 야상은 취사장에 던져두고 전스틴에게 빌려 입은 야상, 태용이의 예비역마크, 두발상태까지 짜증스레 시비를 걸어오는 11중대장.

그는 당일 당직사령도 아니었고, 나의 직속상관도 아니었지만, 전스틴이 빌려준 야상 위에 눈속임으로 붙여놓은 병장 약장을 구겨버리고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못나가게 한다며 지나가는 작전과장, 인담, 보급관에게 우리를 동물원에 나온 동물 구경시키듯 손가락질하고 비하하고 공격했다. 너희들은 가지만 남는 사람들은 욕을 먹는단다. 글쎄, 무슨 욕을??

대대장이 이름표를 보면 어쩔 거냐, 넌 전스틴이 아니잖니 하며 경멸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는 그 앞에서 내 표정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썩어갔지만, 아직 난 간부 앞에서는 늘 영창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힘없는 병사일 뿐이었다. 머리 자르고 10시에나 다시 오라는 인담을 보면서 분노로 가득찬 채 취사장으로 돌아가 다찌에게 마지막 이발을 부탁했다.

'곱게 보내주고' '곱게 가고싶은'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어느새 힘들게 길러온 구레나룻은 다시 하루아침에 잘려나가고 있었다. 짱경에게 A급 야상을 빌려 입고, 8시 반, 모두 구레나룻만 대충 다듬고 다시 모인 전역동기들은 인사과에 전역신고를 하러 갔다.

대대장은 회의중.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

우리는 그저 의자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군담, 관리관, 탄반, 인담, 군수과장, 인사과장을 비롯한 3대대의 썩은 중추를 구성하는 썩을놈들 사이에서 내 속은 탈대로 타들어가 재만 남았다. 아무 지시도 없이 무작정 1시간 쯤 기다렸을 때 BMK가 찾아왔다. 중대장이 나를 호출한단다.

중대장실의 중대장은 화가 나 있었다. 11중대장의 횡포가 이미 여기까지 미친 까닭이다. 후임들이 좋은 마음으로 선임 보내준다며 챙겨준 전역백과 예비역 마크가 그에겐 그저 '금전거출' 일 뿐이다. 규정 운운하며 나를 윽박질러봤자 나는 오늘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는데, 이건 뭐 갈 사람을 애처롭게 가지 말라며 다리가랑이 붙잡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인사과로 돌아와 또 무한 대기, 시계는 어느덧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9시면 도착한다고 하셨는데.. 화장실을 핑계로 전화기까지 도주해 어머니께 하소연 하는 것 밖에는 전역의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8시 20분에 이미 부대 앞에 오셨다고 했다. 지금은 10시 반인데!!!!! '이 개자식들!!!' 분노가 뻗쳐올랐다.

인사과로 들어갔다. 인담이 구사단 마크는 규정 상 휴가제한 3일짜리 위반이라며 태용이에게 카터칼을 내민다. 후임들이 신경써서 그의 야상에 달아놓았을 구사단 마크를 전역 당일에 다시 뜯어내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찾아온 정훈장교가 표정이 왜이리 안좋냐며 말을 걸어온다. 분노로 이성을 잠시 잃었던 나는 절친했던 그 앞에서 막말을 마구 내뱉었다. 두걸음 옆에 인담이 있고 다섯걸음 안에 인사과-군수과 모든 간부들이 있었지만, 막상 욕설섞인 말들이 나오자 겉잡을 수 없었다.

'갈 때까지 ㅁ같이 대하는 ㅁ같은 부대..'

그제서야 인담, 대대장과 연락을 하더니 전역자 간담회 취소되었다고 가란다. 그 간담회를 위해 머리를 밀고 야상을 갈아입고 태용이는 사단마크도 뜯겨진 채로 집에 가는 것이다. 경례고 지랄이고 바로 인사과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전역증을 받으러 보급관에게 찾아갔더니, 중대장 신고도 해야 한단다. 부모님께서 2시간 전부터 와 계신다고 했다. 그때부터 하이패스를 끊은 듯 모든 절차가 증발했다. 엉성하게 중대장과 악수를 하고 바로 고개를 돌려 나왔다.

군생활 내내 나를 고난에 빠뜨리곤 했던 보급관에게 그래도 당신에게 배운게 많았다고 말해줬다. 아쉽고 또 감동한 표정이다.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표현 방법이 서툴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억세기만 했던 그도 헤어짐 앞에서는 약한 사람. 그와의 마지막 악수에 모든 걸 용서하기로 한다.

본래 대대장 신고를 마치고 막사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려던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의무대의 홍이, 12중대의 디에스 등등.. 미안하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당직 후 잠도 자지 못한 BMK, 새벽 사지방을 함께한 쌍포영과 쌍표가 취사장으로 향하는 내 뒤를 따라온다. 나머지 중대원들은 대부분 제설작업을 나갔다. 중간 중간 마주치는 '오늘로써 끝' 인연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취사장을 향해 달렸다.

취사장에서 관리관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그와의 관계설정을 중립으로 돌려놓기로 했다. 취사병으로 일하는 동안 나의 또 다른 어머니였던 이모님께, 취사장에서 그동안 어머니의 정을 내어주셨음을 마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삼스레 망막에 새겨보았다. 전역백을 메고 전역모를 썼다. 너희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부모님께서 벌써 2시간 넘게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참 조리할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나를 따라 나왔다. 위병소가 가까워 올수록 군중이 불어났다. 테니스장에서 제설하고 있던 캐년과 조성호, 사진을 출력해 준 경수 등등 많은 아이들이 따라나왔다. 제설하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중대원에게 나도 힘껏 손을 흔들었다.

위병소 앞, 다시한번 아이들과 한번씩 악수하고 포옹하고 위트를 만땅으로 올린 짧은 이야기를 건넸다. 입대부터 지금까지 개고생한 아이들, 그리고 개고생했던 나,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한마디씩 나눌 때마다 감정이 폭발적으로 고조된다.

한명, 한명 짧은 멘트를 덧붙이며 내 정이 철철 차고 넘치고 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참으려해도 눈물이 차오르더니 입으로는 웃고 장난스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줄줄 흘러나온다. 울음을 터뜨리는 오박사를 뜨겁게 껴안았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그들을 남기고 가야만 하는, 위병소 앞의 기묘한 풍경은 그 어느때보다 따뜻하고 슬프고 행복하고 모든 감정이 차고 넘쳤다.

군생활의 마지막은 그렇게, 그동안 내가 환송해왔던 그 누구의 전역보다도 화려하게 위병소 문을 지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뭐든지 끝맺음이 제일 중요한 법이다. 좌충우돌, 절망과 고난의 세월을 지나 나는 결국 분대장을 단 시점을 전후해 모든 진심을 폭발적으로 발산했고 후임들의 마음을 온전히 얻어냈다.

그들도 또한 이런 나날들을 통해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간부에게 느낀 분노부터 아이들에게 느낀 애정까지 군생활 최고의 희노애락을 전부 경험한 오늘의 나는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나를 무대의 중심으로 올린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는 것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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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1/06 04:20
복병장!
전우들에게 진심으로 사랑받는 고참이었네요!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생많으셨어요!
BlogIcon BOK2 
wrote at 2010/01/06 21:36
때깔 사단 17사에 해안경계하는 3대대, 환경 자체는 분명 친구들이 구르고 있는 강원도보다 월등히 좋을 겁니다. 다만 몸이 편하면 갈굼을 많이 먹듯, 간부들의 꼬장 만큼은 참 세계적이었답니다ㅎ 그런 그들도 저의 전역 만큼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ㅎㅎ (가는날까지 괴롭혔지만ㅠ)

마침 눈도 내렸습니다, 세상 참 아름답습니다ㅎㅎ
wrote at 2010/01/06 14:12
구사단마크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난 사진에 있는 마크를 달고 나왔는데.... 이젠 바꿨나요??
BlogIcon BOK2 
wrote at 2010/01/06 21:39
기도비닉 유지를 위해 현 사단마크는 개구리색의 검은색과 갈색, 녹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입대하고 얼마 지나자 칼라 사단마크를 어깨에 달고 있던 고참들은 멸종했습니다. 구사단마크(칼라 마크)는 전역자에게 예비군 훈련가서 짬되어 보이라고 후임들이 신경 써서 달아주는 일종의 의례가 되었답니다ㅎ
사일런스 
wrote at 2010/03/10 16:57
군대가 아직도.. 저러고 있다는 게.. 참..
BlogIcon BOK2 
wrote at 2010/03/10 21:39
안타깝지만 군대는 힘없는 개인 병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곳인가봐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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