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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A+을 향한 리포트 공작소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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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과 인간' 수업 과제물이다. 과제가 워낙 많다보니 독후감이 아닌, 독전감(;;)을 쓰게 되었다... 이를테면 선감상 후독서 라고나 할까.. 책을 읽지 않고 쓰려다보니 본의아니게 사족을 잔뜩 붙여놨기 때문에 여기에는 일부분만 수록하도록 하겠다.
(중략) 강대국인 미국의 남쪽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쿠바. 쿠바는 그들만의 정치체제 안에서 그들만의 환경방침을 가지고 살아가는 흥미로운 섬나라이다. 그들의 정치적 혁명이었던 쿠바혁명은 그들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쿠바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소련의 전략적 고려를 등에 업고 한때 라틴아메리카 1위, 세계에서는 11위의 부국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중략) 소련의 사탕수수 고가매입과 50억달러의 경제적 지원은 그들에게 약이 되었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그것은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국제분업 관계를 통한 그들의 대외의존적인 경제 시스템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단절로 인해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의 붕괴는 쿠바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식료품과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고, 그들은 당장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작물 재배에 나서야 했다. 물론 화학비료 등의 공급도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의 무공해 식량 생산은 필연이었다. 그렇게 배고픔에서 시작된 작물 재배가 이제는 그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지속 가능한 개발’ 이 되었다. 미국의 경제 봉쇄 아래 괴로워하던 시민들은 스스로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생태도시의 성공 케이스로서 많은 나라들이 배워가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가노포니코‘ 로 시작되는 책 속의 이야기는 도시 속의 밭을 떠올리게 한다. 채식 중심의 새로운 식단은 연구진들의 노력과 재배기술의 지도, 그리고 체계적인 도시농업 계획의 산물이었다. 얼마전 브라질의 꾸리찌바에 대한 영상자료를 시청한 적이 있다.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쿠바 도시농업의 성공은 그들의 식량해결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진 녹색 혁명으로 보인다. 육류 중심의 식단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방식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중략) 북한의 경우를 보자. 쿠바가 자전거를 도입하고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을때, 북한은 무리한 기계화 영농을 시도했다. 그리고 쿠바가 유기농법을 진행할 때 그들은 무차별적인 개간을 하고, 화학비료를 남용했다. 두 나라는 유사한 이념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보는 방식은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할까. 공업화의 급류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도시화가 이루어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특히 수도 서울의 엄청난 인구수와 그에 따른 교통체증, 부족한 녹지와 오염된 공기까지..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 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일까? 서울과 아바나를 비교 분석하여 우리의 상황에 맞게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도시는 농촌이나 자연과 달리 그들로부터 식량과 자원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게 종속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생태계 속에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통해 생성된 것들은, 모두 오염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한 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늘 푸른 혁명‘ 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쿠바혁명의 성공원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쿠바의 녹색혁명 역시 그들 상황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그들의 환경적 잣대를 별다른 고려 없이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울이 하루아침에 아바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이며, 바람직한 참고사항이 된다.
쿠바는 묵묵히 제시하고 있다. 비단 우리 세대 뿐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그들은 국가 규모로 실행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하는 까닭은, 지금의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최대의 문제는 차츰 인류의 생존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 대로 물들어버린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주기에는 아직 무리인 것일까. 우리세대의 환경의식에 대한 정확한 비판의식도 없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책에 대한 감상만 여기에 주욱 늘어놓는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소 냉소적인 시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쿠바의 성공처럼 ‘국지적인 성공은 가능할지 몰라도, 전 인류적인 성공은 어려울 것‘ 이 지금 내가 가진 지론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과연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나의 물음이기도 하지만 전 인류에게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모든 인류가 자본주의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할 때까지, 나의 대답은 정말로 매우 유감스럽지만 ‘아니오’ 이다.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단순히 책에 대한 감상을 적기에 내 생각이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감상 이상으로 중요한 대답일 것이다.
(중략) 강대국인 미국의 남쪽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쿠바. 쿠바는 그들만의 정치체제 안에서 그들만의 환경방침을 가지고 살아가는 흥미로운 섬나라이다. 그들의 정치적 혁명이었던 쿠바혁명은 그들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쿠바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소련의 전략적 고려를 등에 업고 한때 라틴아메리카 1위, 세계에서는 11위의 부국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중략) 소련의 사탕수수 고가매입과 50억달러의 경제적 지원은 그들에게 약이 되었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그것은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국제분업 관계를 통한 그들의 대외의존적인 경제 시스템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단절로 인해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의 붕괴는 쿠바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식료품과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고, 그들은 당장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작물 재배에 나서야 했다. 물론 화학비료 등의 공급도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의 무공해 식량 생산은 필연이었다. 그렇게 배고픔에서 시작된 작물 재배가 이제는 그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지속 가능한 개발’ 이 되었다. 미국의 경제 봉쇄 아래 괴로워하던 시민들은 스스로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생태도시의 성공 케이스로서 많은 나라들이 배워가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가노포니코‘ 로 시작되는 책 속의 이야기는 도시 속의 밭을 떠올리게 한다. 채식 중심의 새로운 식단은 연구진들의 노력과 재배기술의 지도, 그리고 체계적인 도시농업 계획의 산물이었다. 얼마전 브라질의 꾸리찌바에 대한 영상자료를 시청한 적이 있다.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쿠바 도시농업의 성공은 그들의 식량해결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진 녹색 혁명으로 보인다. 육류 중심의 식단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방식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중략) 북한의 경우를 보자. 쿠바가 자전거를 도입하고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을때, 북한은 무리한 기계화 영농을 시도했다. 그리고 쿠바가 유기농법을 진행할 때 그들은 무차별적인 개간을 하고, 화학비료를 남용했다. 두 나라는 유사한 이념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보는 방식은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할까. 공업화의 급류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도시화가 이루어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특히 수도 서울의 엄청난 인구수와 그에 따른 교통체증, 부족한 녹지와 오염된 공기까지..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 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일까? 서울과 아바나를 비교 분석하여 우리의 상황에 맞게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도시는 농촌이나 자연과 달리 그들로부터 식량과 자원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게 종속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생태계 속에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통해 생성된 것들은, 모두 오염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한 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늘 푸른 혁명‘ 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쿠바혁명의 성공원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쿠바의 녹색혁명 역시 그들 상황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그들의 환경적 잣대를 별다른 고려 없이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울이 하루아침에 아바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이며, 바람직한 참고사항이 된다.
쿠바는 묵묵히 제시하고 있다. 비단 우리 세대 뿐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그들은 국가 규모로 실행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하는 까닭은, 지금의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최대의 문제는 차츰 인류의 생존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 대로 물들어버린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주기에는 아직 무리인 것일까. 우리세대의 환경의식에 대한 정확한 비판의식도 없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책에 대한 감상만 여기에 주욱 늘어놓는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소 냉소적인 시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쿠바의 성공처럼 ‘국지적인 성공은 가능할지 몰라도, 전 인류적인 성공은 어려울 것‘ 이 지금 내가 가진 지론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과연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나의 물음이기도 하지만 전 인류에게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모든 인류가 자본주의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할 때까지, 나의 대답은 정말로 매우 유감스럽지만 ‘아니오’ 이다.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단순히 책에 대한 감상을 적기에 내 생각이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감상 이상으로 중요한 대답일 것이다.









